페트루스 코르크 접사 모드~ 오래오래 간직할려고 사진으로 남긴다.
보면 볼수록 넘 이쁜 페트루스~ 조아조아~~~~
샤또 뻬뚜루스
보르도의 뽀므롤(Pommerol) 지역의 작은 포도밭에서 나오는 이 샤또 뻬트뤼스는 그 이름만 듣는 것으로도 와인 애호가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와인이다. 보르도 지역에서 생산되는 와인 중에서 가장 비싼 와인이다. 또한 이 뻬뜨뤼스는 실로 가장 진귀한 와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약 3만평 정도의 작은 면적에 연간 생산량은 3-4만병 정도밖에 안되며, 판매 또한 배당제로 진행된다. 와인이라는 것이 마셔버리면 다시 채워 넣을 수 없는 것이므로 해가 바뀔수록 희귀해지는 게 사실이다. 샤또 뻬뜨뤼스는 메를로(Merlot)를 단일 품종으로 하여 만들어지는데, 이것은 뽀므롤 지역의 특징으로 다른 보르도 지역의 와인보다 색상도 깊고 맛도 부드럽다.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메를로는 부드럽다’라는 속설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뻬트뤼스의 메를로 포도는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내공을 지니고 있다.
뻬트뤼스라는 이름은 성경 속의 성 베드로, 피터, 페테르 등의 라틴식 발음인 뻬트뤼스에서 유래했다. 라벨에도 교황 1세인 뻬트뤼스의 초상을 둘러싸고 포도나무들이 장식되어 있다. 뻬트뤼스는 메독이나 쎙떼밀리옹의 와인처럼 그랑 크뤼라는 호칭도 달지 않고 있다. 단지 뻬트뤼스라는 이름과 그랑 뱅(Grand Vin)이라고 쓰여 있다.
뻬뜨뤼스의 명성이 단지 소량생산을 통한 귀족마케팅과 천혜의 자연조건에 의해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뻬뜨뤼스에 쏟는 정성은 실로 놀라울 정도이다. 예를 들면, 수확기에 비가 오는 해에는 헬리콥터의 동력을 이용해 바람을 일으켜 포도를 건조시킬 뿐만 아니라 쾌청한 날씨라고 해서 많은 농부를 일시에 포도밭에 투입하지 않고 점심 전에는 포토 밭에 아예 내보내지도 않는다. 이는 오후가 되어 포도의 이슬이 증발하고 포도 알이 건조되어 내부의 숙성 도가 높아진 최상의 맛을 낼 수 있는 상태에서 수확하기 위해서이다. 또한 이슬이라도 포도에 묻어 와인이 조금이라도 묽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뻬뜨뤼스는 사실 1878년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금상을 수상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수량이 너무 적어 외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와인이었다. 뻬뜨뤼스가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된 것은 제 2차 세계대전 이후였는데, 그 정점에는 1945년 이 샤또를 사들인 호텔 경영자였던 에드몽 루바(Edmond Loubat)가 있다. 1950년경에서부터 뉴욕의 최고급 프랑스 레스토랑에서 이 와인이 메인 리스트에 등장했는데, 유명 인들의 입에 오르내리면서 상류상회에서 사랑받기 시작했다. 아마도 마담 루바는 사교계에서 꽤나 이름을 날렸던 모양이다. 그녀가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의 결혼식에 초대를 받았을 때 일이다. 런던에 머물던 루바는 최고급 프랑스 식당에서 식사를 한두 계산을 하려고 보니 돈이 조금 모자랐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미리 준비해온 뻬뜨뤼스를 가져오게 해 계산을 치렀다고 한다. 이 에피소드는 뻬뜨뤼스에 대한 그녀의 자신감을 보여줄뿐더러 뻬뜨뤼스에 대한 높은 인식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이다.
현재는 장 삐에르 무엑스(Jean Pierre Moueix)가 소유하고 있다. 뻬트뤼스를 소유하고 있던 와인 여걸 마담 루바는 심혈을 기울여 포도밭을 가꿨고, 그로 인해 최고의 와인들을 생산하게 된다. 품질을 인정받기 시작하자 위에서 본 것처럼 그녀는 뻬트뤼스를 아주 비싼 가격으로 시장에 내놓았다. 이 때 장 삐에르 무엑스가 뻬트뤼스의 상품성을 알아보고 독점판매권을 쥐게 된다. 그렇게 해서 1945년부터 무엑스와 루바는 한배를 타게 되었고, 현재는 무엑스 집안에서 소유권을 가지면서 장 삐에르의 아들인 끄리스띠앙이 뻬트뤼스 생산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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