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와인명가-바롱 필립 드 로칠드

2006. 10. 13. 댓글 개


18세기 유럽의 금융 재벌인 로칠드 가문이 와인과 인연을 맺기 시작한 것은 바롱 나다니엘 드 로칠드 남작이 프랑스로 이주하면서 부터다.

1853년 영국에서 프랑스로 이주한 그는 보르도 메독지역에 위치한 뽀이약 마을을 중심으로 포도밭을 사고 그 포도원을 ‘샤또 무똥 로칠드’라 명명하게 된다.이곳이 바로 그 유명한 샤또 와인의 출발지다.

샤또 와인은 1870년 나다니엘 남작이 죽고 그의 아들, 손자로 이어질때까지 그렇게 유명하지 않았다. 그러나 1922년 증손자인 바롱 필립이 20살 나이로 샤또를 상속받으면서 세계적 와인으로의 전기가 마련된다.

바롱 필립은 1988년 사망할 때까지 66년 동안 바롱 필립은 ‘샤또 무똥 로칠드’를 세계적인 포도주의 명가로 키우는 데 온힘을 기울인다. 그 결과 1855년 설정된 이래 한번도 등급 변경이 없었던 보르도 그랑 크뤼 체제 (5개 등급, 61개 와인)도 샤또 무똥 로칠드의 100년간의 끊임없는 승급요청에 인수 당시 2등급이었던 등급을 1973년 1등급으로 승격시킨다. 세계적인 명가 반열에 오른 것이다.

와인너리는 그의 딸 ‘바로네스 필리핀 드 로칠드’에게 상속된다. 바로네스는 아버지의 열정을 그대로 이어 받아 세계적인 와인너리로 만드는데 더욱 박차를 가한다.

프랑스 보르도 ‘랑그독루씨용’의 와인너리를 비롯해 1979년에는 미국의 로버트 몬다비사와 협력해 캘리포니아에 ‘오퍼스원’(Opus one) 와인너리를, 1997년에는 칠레의 콘차이토로사와 ‘알마비바’(Almaviva) 와인너리를 만들게 된다. 이들 와이너리때문에 현재 바롱 필립 드 로칠드사가 매년 1800만병이상의 포도주를 생산하고 80%이상을 세계시장에 수출할 수 있게 됐다.

바롱필립은 프랑스 와인 역사에 기록 될 3가지 업적으로 유명하다.

첫째.1924년 샤또 무똥 로칠드 와인을 처음으로 샤또(와이너리 현장)에서 병입,이후 다른 그랑크뤼 와인들이 모두 이 전례를 따르게 되었다.둘째,1932년 샤또 무똥 로칠드의 세컨드 와인으로 탄생한 무똥 까데는 여러 포도품종을 혼합하는 기술로 개발,보르도 원산지 명칭 통제(AOC)을 처음으로 부여 받았다.셋째.샤또 무똥 로칠드의 라벨을 1945년부터 오늘날까지 매년 세계 유명화가들에 의뢰해 제작하는 등 와인과 예술의 절묘한 조화를 통해 라벨의 디자인을 혁신했다.45년부터 세자르,샤갈, 칸딘스키, 피카소, 앤디 워홀 등 현대회화의 거장들이 총망라 되어있다. 샤또 무똥로칠드 라벨 컬렉션은 현대 회화 걸작선이라고 할 수 있다.
쿠팡 파트너스 활동의 일환으로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을 수 있으나 추가 금액 없이 구매 가능합니다

◀ 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