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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리 와인의 살아있는 전설을 만나다

2006. 10. 13. 댓글 개

하필이면 일요일 저녁이었다. 우선은, 가족들의 반발이 거셌다. “일요일 저녁에 가족들을 내팽겨치고 혼자 저녁 먹으러 나가는 가장이 어디 있느냐”는 항변이었다. 옳은 얘기였다. 대부분의 일요일에 출근하고도 가급적 저녁은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먹는 것을 원칙으로 삼 아왔다. 더군다나 이번은 두어달만에 처음 쉰 일요일이었다. 가족들과 1박2일 나들이를 다녀온 직후, 집에서 옷가방 정리할 시간도 없이 곧바로 약속장소로 출발했다. 가족의 따가 운 시선을 등 뒤에 두고서 말이다.

그러나, 이날 저녁만큼은 가족들에게 ‘양보’할 수 없었다. 지난 24일 저녁은 이탈리아 와인 의 최고봉 ‘안젤로 가야(Angelo Gaja)’와의 특별한 만남이 예정돼 있었다. 안젤로 가야는 안티노리(Antinory)와 함께 이태리 와인 르네상스 시대를 연 주역이다. 이태리 토스카나 지 역의 안티노리, 그리고 프랑스와 맞닿아 있는 피에몬테 지역의 안젤로 가야, 이 두 사람은 오늘날 이태리 와인을 세계와인시장에서 특급와인으로 대접받게 한 주인공들이다. 두 사람 간에 차이가 있다면, 안티노리가 ‘와인의 대중화’에 앞장섰다면 안젤로 가야는 이태리 와인 의 ‘최고 품질’을 추구했다는 정도이다. ‘이태리 와인의 살아있는 전설’로 불리는 그를 직접 만날 기회가 온 것이다.

10년만에 한국에 온 안젤로 가야는 이번 서울 방문이 두번째라고 했다. “1859년에 설립된 우리 가야 가문은 4대째로 접어들었습니다. 현재 제 나이가 64세인데, 2명의 딸과 막내 아들을 두고 있습니다.” 안젤로 가야는 이번 서울 길에 큰딸인 ‘가이아 가야(Gaia Gaja)’와 동행했다. 그의 아버지 안젤로 가야는 그녀의 출생을 기념, 그녀의 이름을 붙인 ‘가이아&레 이’라는 화이트와인을 만들었다. 이날 저녁에 처음 마신 와인이 ‘가이아&레이’였다. 샤도네 이 품종으로 만든 이 와인은 짙은 과일향이 입안 전체를 감쌌다. 한 병 가격이 23만원이 넘는 꽤나 비싼 와인이다.

안젤로 가야는 와인에 대한 열정이 철철 넘치는 사람이었다. 그의 ‘이태리식 영어’는 알아 듣기 어려웠지만, 와인에 대한 장황한 설명을 듣고 있노라면, 그의 나이가 예순을 훨씬 넘 었다는 사실을 믿기 어려웠다. “이태리는 전 지역이 포도원이라 할 수 있는데 약 1000여 가지가 넘는 포도품종들이 생산되고 있습니다. 이중에서 약 700여 종이 넘는 포도품종들로 와인을 만들지요. 특히, 최고품질의 와인을 만드는 지역으로는 바로 피에몬테(Piemonte) 지 역과 토스카나(Tuscan)지역을 꼽지요. 약 30년 전부터 이태리 와인의 르네상스가 시작되면 서 지금은 전국적으로 좋은 품질의 이탈리아 와인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피에몬테주에서도 안젤로 가야의 포도원이 있는 랑게(Langhe) 지역에서는 모두 ‘네비올로 (Nebbiolo)’라는 포도품종들로 레드와인을 만든다. 그런데, 이름도 생소한 네비올로는 어떤 포도품종일까.

안젤로 가야는 이태리 ‘토종 품종’인 네비올로와 ‘글로벌 품종’인 카베르네소비뇽의 구분을 영화배우에 비유해 다음과 같이 명쾌하게 설명했다. “카베르네 소비뇽은 대중적인 매력남인 영화배우 죤웨인(John Wayne) 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쉽게 이해가 되고 접근성이 용이하며 많은 대중들을 압도하는 품종이지요. 반면에 네비올로는 이태리의 유명 배우인 마르첼로 모 스테로이아니(Marcello Mosteroianni)에 비유할 수 있지요. 쉽게 이해할 수는 없으나 한번 빠지면 그 깊이와 강인한 정열에 헤어날 수 없다는 점이 공통점입니다.” 카베르네소비뇽이 보다 대중적인 반면, 네비올로는 다소 까다로운 품종이라는 얘기였다. 와인초보자들은 당연 히 ‘카베르네소비뇽’이 훨씬 접근하기 쉽다는 얘기인 반면, 첫 인상은 무척 묵뚝뚝하고 쉽 게 친해지지 않지만 일단 한번 친해지면 깊이가 있고 관대하며 힘과 정열이 숨어있는 와인 은 ‘네비올로’라는 얘기였다. 안젤로 가야는 “나도 네비올로 같은 남자이고 싶다”고 웃으며 말했다.

그러나, 안젤로 가야 와인은 너무 비싸다. 20만원 이하 와인을 찾아볼 수 없다. 총 생산량 이 와인별로 몇 천병에서 많아 봤자 5만병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일년 전체 생산량이 기 껏해야 30만병 정도밖에 되지 않다보니 가격이 비쌀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특히, 포도수 확이 좋지 않은 해에는 아예 ‘안젤로 가야’ 이름으로 와인생산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런 연유로 안젤로 가야는 그동안 캘리포니아, 호주, 칠레 등 해외 여러 주요 와이너리에 서 다양한 ‘합작 제의’를 받았다. 이중 두드러진 것이 최근 ‘미국 와인의 최고봉’ 로버트 몬 다비의 파트너쉽 제안이었다. 그러나 이 제안 역시 안젤로 가야가 받아들이지 않았는데, 그 이유로 든 안젤로 가야의 설명이 재미있다. “파트너쉽이란 결혼하는것과 같은 것이어서 서 로가 궁합이 맞아야 하는데, 생산 규모면에서 로버트 몬다비가 ‘코끼리’라면 우리는 겨우 ‘모기’에 불과하다. 그런데, 어떻게 꼬끼리와 모기가 속궁합(섹스)이 가능하겠느냐고 얘기 했더니 로버트 몬다비도 더 이상 합작 얘기를 꺼내지 않더라.” 지금도 그는 로버트 몬다비 와는 아주 가까운 친구로만 있다고 했다.

사실, 나는 와인 맛을 잘 모른다. 그러나, 안젤로 가야 와인들은 그 와인들을 만든 안젤로 가야 만큼이나 강한 힘이 느껴졌다. 이날은 일요일 저녁이라 내가 와인을 조금씩 마셔 내 와인 잔에 와인이 꽤 남아있었는데, 옆자리의 지인은 “이렇게 귀한 와인들을 남기다니?”하 면서 내가 남긴 와인을 자기 잔에 부어 다 마셨다. “아무리 좋은 와인도 적당히 마셔야 하 지 않을까”라는 충고는 차마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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