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또 디켐(Chateau d'Yquem)은 스위트 와인의 대명사이자 전통인 동시에 쏘테른의 최상의 와인이자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스위트 와인의 이름이다. 이켐(Yquem)이 레드 인지 화이트 인지 스위트 한지, 드라이 한지, 하물며 어디에서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조차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잘 알려진 세계에서 가장 진귀한 와인이다.
훌륭한 스위트 와인은 우연한 발견으로 양조되기 시작한 와인이지만, 특별한 자연과 기후 조건의 정확한 결합이 필요하며 또한 비용과 시간을 요하는 일이라 매년 생산되지 않는다. 훌륭한 화이트 와인이 생산되기 위해서는 풍부한 자원, 오랜 전통, 그리고 근면한 완벽주의도 절대적으로 필요한 요소들이지만 여기에 자연의 은총이 따라야 한다. 샤또 디켐은 어쩌면 이 모든 것을 선물 받은 행운아라고 할 수 있다.
샤또 디켐은 쏘테른 지역을 형성하는 4군데 소지역의 전부를 전망할 수 있는 쏘테른의 소구역 언덕 정상에 자리하고 있다. 정신적으로 뿐만 아니라 지리적으로도 디켐은 쏘테른의 중심에 자리한다. 동쪽은 이켐의 바로 이웃인 샤또 리유쎅(Ruissac)의 주요 재배지인 파르그(Fargues) 지역이며 남쪽은 쏘테른 소지역의 나머지 부분이며 서쪽은 봄 (Bommes) 지역이고 북쪽은 샤또 쉬뒤로 (Ch.Suduiraut)가 위치한 프레냑(Praignac) 지역이며 거기서 자동차 도로와 작은 시론강을 건너면 바르작 지역이다. 저 멀리 가론강 너머 쎙트크르와 두몽의 언덕이 있다.
이 이켐의 역사는 오늘날까지도 신비로운 상태로 전하여진다. 1993년 샤또 디켐의 설립 400백주년 기념행사¹⁾ 가 거행되었다. 이 기념일은 자크 드 소바지(Jacques de Sauvage)가 그 당시 왕가의 농장인 재배지를 교환동의서만으로 보유권을 취득한 날인 1593년 12월 8일로부터 400년이 되는 날이다. 뤼르 살뤼스의 가계를 살펴보면 리르(Lur), 살뤼스(Saluces), 소바지(Sauvage)의 3 가계로 나누어진다. 토지의 문서는 가문의 역사를 990년까지 소급 추정할 수 있게 한다. 뤼르 가문은 독일의 프랑켄에서 태동하여 990년 프랑스 중부의 리무쟁에서 살았으며 반면 살뤼스 가문은 이태리 북부 피데몬트에서 와 프랑스에 정착하였다.
루이 16세 때인 1785년 6월 6일 이켐의 여주인 소바지 가문의 프랑스와 조세핀과 기병 여단의 대령인 뤼르 살위스 가문의 루이 아메데의 결혼으로 이켐의 농장은 뤼르 살뤼스가의 소유가 된다. 하지만 루이 아메데는 그 당시 이미 노령이어서 그 후 3년 밖에 살지 못하고 1788년 사망하였다. 루이 16세부터 나폴레옹 3세에 이르는 혁명 기간을 거치는 동안에도 디켐의 선조들이 많은 어려운 시련에도 불구하고 그들 자손의 유산을 보호하고 관리하였던 것 같이 이켐의 여주인은 남편의 사망 후 이 농장이 자자손손 영원히 후손들에게 영속될 수 있도록 여러 모로 노력하였다. 그녀는 후손들에게 근본적인 가치와 도덕적인 존경심 그리고 조상 전래의 의무를 전파시켰으며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농장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예전과 같은 규모(약 457에이커)로 유지관리 하였다.
뤼르 살뤼스가의 베르트랑(Bertrand 1810~67) 후작은 뤼르 살뤼스가의 장자이며 오늘날 우리가 즐기고 있는 귀부병의 혜택인 감미롭고 향기롭고 섬세한 단맛의 쏘테른 와인이 처음 생산되기 시작한 시대의 사람이다. 이 와인의 생산이 정확히 어떻게 언제 어느 곳에서 이루어지기 시작했는지 정확하게 밝히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18세기 중엽부터 이켐과 쏘테른 지역에서 달콤한 와인들이 생산되었다는 것은 쏘테른 지역과 지중해 연안 그리고 이베리아 반도의 단 강화 와인을 분석한 참고 문헌과 18세기 당시의 와인 리스트에서 입증되고 있다. 어떤 자료들에서는 샤또 디켐이 첫 귀부병에 영향을 받은 포도를 수확한 것이 1847년이었다고 전하고 있다.
1847년이 역사적인 해로 남게 된 데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러시아를 여행하던 후작 베르트랑의 귀환이 지연되자, 자연적으로 그의 포도 수확 지시도 늦어졌고 결과적으로 수확도 할 수가 없었다. 그가 귀환 했을 때 이미 포도는 부패된 상태였지만 그는 그래도 포도를 수확하라는 지시는 내렸고 그 결과 이전에는 맛볼 수 없는 멋진 와인이 양조되게 되었다고 한다.
이 1847년산 와인은 제정 러시아의 자르 황제의 동생인 콘스탄틴 황태자(대공)에게 1859년에 1톤노(12병들이 100박스)당 거짓말 같은 2만 금프랑에 판매되었다. 지금보기에는 상당히 과장된 가격인 듯 하지만, 미국의 대통령이 된 토머스 제퍼슨 대사가 프랑스와 이태리의 포도 농장을 두루 여행하고 끝 무렵인 1787년 5월 보르도에 도착하여 쏘테른에 관해 보고한 내용을 보면 수긍이 간다. 다음의 그의 보고 내용이다.
[프랑스와 이태리 전 지역에서] "가장 좋은 와인은 M. Diquem²⁾ 이다."
다른 기록에 의하면 그는 1784년산 250병을 직접 구매 요청을 했을 뿐 아니라 후에 미국에 귀국하여 다시 40박스의 디켐 구매 요청을 하였다. 10박스는 자신의 것이며 30박스는 조지 워싱턴 대통령 것이었다고 하니 얼마나 좋아했는지 알 듯하다.
이켐에서 태어나 여기에서 생을 마감한 베르트랑은 농장과 와인을 사랑한 사람으로 농장에 많은 주요한 개선을 이룩한 사람이다. 재배지 내에 현재도 사용하고 있는 약 100km에 달하는 배수망의 설치와 포도주 저장 창고의 주요한 개축 모두가 그의 업적이다. 또한 그의 지도력은 이켐의 품질과 가격면에 있어 경쟁자가 없게 만들었다. 그의 노력의 결과로 1861년과 1864년 와인은 샤또 라피트보다 비싼 가격에 팔렸으며 러시아 황제가 주요 고객이었다. 이켐의 명성은 1855년 파리 만국 박람회 때의 등급 분류 이후 확고해졌다.
뤼르 살뤼르 가문에는 베르트랑(1810~67) 후작 이외에 또 다른 동명이인이 있는데 1차 세계 대전 중 장교로 활약한 베르트랑(1968년 사망) 후작이다. 1968년까지 반세기 동안 그는 와인 현장의 가장 중요한 대변인 노릇을 한 사람이다. 물론 이 전쟁 기간 중 이 샤또 또한 부상 군인의 치료를 위한 야전 병원으로 증발되었다. 하지만 수대에 걸쳐 상속되어온 토지와 농장은 별 손상 없이 잘 보존되었다. 뤼르 살뤼스 가문의 알랙산드르 (Alexandre) 백작은 1968년 12월 대단히 오랫동안 이켐을 지배해오던 그의 아저씨인 베르트랑 후작의 사망으로 이켐의 경영권을 인계 받았다.
정확히 1785년 6월 6일이래 2백년이 넘도록 샤또 디켐의 농장과 뤼르 살뤼스 가문의 지분에 조금의 변동도 없이 유산이 잘 유지되어 오다가 1996년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의 세계 공룡 그룹인 LVMH(모엣-헤네시, 루이비통)이 이켐의 주식 55%를 인수하였으며 또 1999년 4월 19일에는 알랙산드르의 주식 7%와 그의 아들 베르트랑 주식 2.2%를 다시 추가 인수함으로써 뤼르 살뤼 가문의 주식은 35.8%로 줄어들었다.
그러나 알렉산드르 백작은 전과 변함없이 샤또 디켐의 사장직을 맡고 있으며 62명 직원들의 조력과 30년이 넘는 그의 와인 노하우로 LVMH 그룹 자매 회사의 새로운 파트너로 그의 의무를 계속 발휘하고 있다. 또 그는 와인 품질에 손상을 주는 일에 대해서는 절대 타협하지 않으며, 농장의 개선이나 개량을 위해서는 그 어떤 희생도 감소한다는 그의 철학에는 변함이 없다고 했다. 그는 "LVMH 와 더불어 1년을 보낸 후 나는 내가 원하던 것을 했다고 하면서 나는 예 또 아니오를 분명히 말할 수 있는 자유인"이라고 당당히 밝히고 있다.
이켐은 늘 대단히 큰 농장이었다. 만약 이켐이 쏘테른에서 대단히 큰 농장이 아니라고 한다면 생산량을 뜻하는 것이지 면적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이켐의 농장 전체는 150헥타르다. 이 면적의 3분의 2만 포도 재배를 한다고는 하나 실지 농사에는 80헥타르만 사용된다. 포도나무의 수령이 40~45년이 될 때 매년 약 3헥타르의 노령 포도나무를 뽑고 다시 포도나무를 다시 심기 전 3년 동안은 묵힌다.
그리고 새 포도나무에서 양조용 포도를 수확하려면 적어도 15년을 기다린다. 80헥타르의 농장에서는 쎄미용 80%와 소비뇽 브랑 20%의 포도 품종을 재배하는데 헥타르당 평균 생산량은 단 7 헥토리터(1헥토리터 :100L)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은 포도나무 1 주의 년 생산량이 와인 한잔 분량 밖에 안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토양은 위치에 따라 차이는 있으나 모래, 침적토, 점토, 자갈이 섞인 붉은 갈색의 다양한 토질이다. 이 토양에서 재배된 포도들은 전통적인 방식을 따른다. 우선 완전히 익은 포도알만 하나하나 수작업으로 거두어들인다. 이켐에서는 150명의 추수자들의 손을 빌어 두 달 이상에 걸쳐 13번씩 포도밭을 왕복하며 하루에 6개 와인 바렐(225 L) 분량의 잘 익은 포도 알만 수확한다.
이렇게 정성 들여 수확한 포도는 조그마한 나무 압축 통에서 즙을 짜내 한 시간 내지 두 시간 동안 안정을 시켰다가 새 오크통(225L)에서 오랜 발효를 거쳐 알코올 14도, 당도 6도의 와인이 된다. 이 와인은 다시 새 오크통에서 36개월에서 최장 42개월 동안 숙성시킨 후 병입하여 시중에 출하된다. 병입되지 않은 와인은 이켐의 외부인은 그 누구라도 시음할 수 없다.
자연의 영향을 많이 받는 쏘테른 와인은 위험한 사업인 것과 같이 이켐 또한 위험이 따르는 포도 농장이다. 1950년과 1977년 수확은 추운 날씨로 반으로 감소하였으며 1951년과 1952년에는 우박으로 수확을 전혀 할 수 없었다. 그리고 1964년은 10월초부터 한 달 동안 내린 비로 이켐을 만들 수 없었으며 1972년 1974년 1992년 또한 와인을 전혀 생산하지 못했다.
1959년 이켐은 "세계가 깜짝 놀랄 화이트 드라이 와인 이그랙("Y"/ygrec)을 선보였다. 이 와인은 무게감, 점도, 색깔과 향이 쏘테른의 다른 스위트 와인과 많이 흡사하지만 당도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 드라이한 와인이다. 이 와인은 쏘테른 지역에서 생산하는 소비뇽 블랑 와인과 같이 일찍 마셔야 하는 와인이 아니다. 이 와인은 유년기에는 너무 무겁지만 시일이 지나면서 아주 상당히 좋아지는 와인이다.
이그랙은 진귀하거나 전형적 와인은 아니더라도 호기심이 가는 와인이다. 이그랙 와인은 이켐 와인에 사용하지 못하는 잠재적 알코올 도수 14도 이하의 쎄미용과 소비뇽 블랑을 동 비율로 배합하여 생산한다. 주의해서 기억해야 할 점은 이그랙 와인은 그 재배지역을 "쏘테른"이라고 명시하지 않고 "보르도"라고 한다는 것이다.
이켐은 아주 청결하고 순수하고 깊은 개성이 있고 다른 쏘테른 와인이 이룰 수 없는 농익은 과일 향과 상쾌한 타르타르산의 균형, 고귀함, 감미로운 맛, 무게감을 지닌 와인이다. 이루다 표현할 수 없으나 무엇보다도 쏘테른 와인의 가장 훌륭한 점은 생명력이 길다는 것이고 이켐은 모든 쏘테른 와인의 최장수자라는 것이다.
눈이 펑펑 쏟아지는 날 애인이나 정다운 사람들과 함께 이 샤또 디켐을 치즈 케익 혹은 록포르트(Roquefort) 치즈와 더불어 마시면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지 않을까? 그리고 이날은 역사와 전통 그리고 최고의 품질을 위한 희생과 노력이 이를 알아주는 와인애호가를 만나는 날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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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포도원의 역사는 오래 되었으나 현 샤또는 15세기에 건축된 부분도 있긴 하지만 사실상 근대에 증축된 건물이다.
2. 당시 Chateau d'Yquem의 명칭이다.
참고자료
http://blog.daum.net/de_dieu/4262666
편집: 한은화 / 호텔푸드코디네이터과 2학년
과목: 와인의 이해
담당교수: 이승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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